정부主導 태양광 사업이 남긴 교훈
몇 해 전 한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태양광 패널을 전국에 도입하며 녹색 혁명을 약속했다. “재생에너지 3020” 계획 아래 2030년까지 전력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거대한 정량 목표가 세워졌고, 보조금 지원과 설치 장려 정책이 쏟아졌다. 초기에는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2018년부터 2019년 중반까지 1년 반 동안에만 4.5GW 이상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보급되는 등 목표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듯했다 [1]. 그러나 “양을 늘리는” 데 집중한 태양광 드라이브의 이면은 시간이 지나며 드러났다. 학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잦은 정책 변경, 미흡한 지원 설계, 정부 부처 간 조율 부족, 부실한 모니터링 등으로 추진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고, 최종 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 비중도 유사 경제수준 국가들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2]. 이는 급한 정권 성과에 몰두한 나머지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떨어졌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태양광 산업의 혁신 경쟁력 부재가 큰 교훈이다. 정부 주도로 설치량을 밀어올린 사이, 국내 산업의 기술 역량 강화는 뒷전이었다. 그 결과 국내 태양광 공급망은 외국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실제로 5년 전만 해도 50%를 넘었던 국산 태양광 셀 시장점유율이 2024년에 사상 최초 한 자릿수(4%)로 추락했고, 같은 해 중국산 셀은 한국 시장의 95% 이상을 점령했다 [3]. 값싼 중국산 모듈 공세에 국내 기업들이 밀린 데 이어, 기술집약적 핵심 부품인 셀마저 중국에 장악당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모듈 시장을 내준 건 가격 탓이지만 셀마저 내준 건 기술력에서도 밀렸기 때문”이라며 산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양적 보급에 치중한 정책은 국내 기업의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보조금이 줄어들자 산업은 급속히 위축되고 말았다. 전문가들도 “온실가스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느라 질보다 양에 집착한 것이 패착”이라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 시절 보급 일변도 정책이 중국 업체들의 시장 장악을 가속화했다고 평가한다. 정부 지원에 의존한 거품이 빠지자 2024년 국내 태양광 기업 95%가 시장 상황이 전년보다 악화됐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4]. 태양광 사례는 보여준다 – 단기 성과에 급급한 양적 지표 중심 정책은 지속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며, 오히려 외부 의존과 부실을 키울 위험이 있다는 것을.
2025년 AI 인재 양성 사업의 Déjà Vu
이제 같은 오류가 인공지능(AI) 정책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정부는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을 국정과제로 내걸고, 2025년 현재 대대적인 AI 인재 양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 한 해에만 AI 인재 교육에 1조 4천억 원을 투입하여 초중등 코딩·AI 교육 의무화, 대학 정원 확대, 성인 재교육 등 전 사회적으로 AI 인력 저변을 넓히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5] [6]. 겉보기에는 전국민의 AI 역량을 끌어올리는 포부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모두를 위한 AI 교육” 구상이 과연 진정한 AI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7] [8].
돌이켜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코딩 교육 열풍”을 주도하다가, 정권이 바뀌자 이제는 코딩을 뒷전으로 하고 AI 실무 인력 양성에 초점을 옮겼다. 3~4년 주기의 정책 사이클 속에서 교육 방향이 급변하는 현상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목표가 바뀌는 것 자체보다, 이런 단기적 방향 선회로 인해 정책 일관성과 교육 생태계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 정부가 초·중·고 코딩 의무교육을 도입해 사설학원 붐까지 일었지만 현 정부 들어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었고, 대신 AI 인재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예산과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이는 마치 유행을 좇듯 행정적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교육 정책의 방향키를 급히 틀어버리는 관행으로, 장기적인 생태계 구축보다는 당장의 숫자 성과에 집중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현재 추진 중인 AI 인재 양성 사업의 구조적 한계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양적 목표 우선, 질적 성과 뒷전”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취약계층부터 비전공 직장인까지 “폭넓은 대상에게 고르게 지원”하겠다며 예산을 분산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AI 경쟁력은 소수의 핵심 전문 인력에게 좌우된다. 세계적인 AI 기업이나 연구기관을 움직이는 인재는 불과 수백 명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엔비디아, 오픈AI, 메타 등 글로벌 AI 선도 기업들이 보유한 최고급 AI 전문가 집단이 그 예다. “AI 인재는 6개월 단기 과정으로 탄생하지 않는다”는 지적처럼, 진정한 전문가란 오랜 연구와 산업 현장 경험 속에서 길러지는 법이다. OECD 조사 역시 각국의 AI 인력 중 60% 이상이 석·박사 학위를 갖춘 고학력 고숙련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초급 교육을 수백만 명에게 시킨다고 해서 그 중 세계적 수준의 AI 인재가 양산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기간에 수많은 ‘AI 수료자’를 찍어내는 현재 방식으로는 국제 경쟁에서 통할 만한 질적 인재 풀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7] [8].
산학 연계와 현장 통합의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AI 인재는 교실이 아니라 기업 연구실과 현업 문제 속에서 성장하는데, 한국의 인재 양성 정책은 여전히 정부 주도의 프로그램 공모와 예산 집행, 그리고 행정적 성과 관리에 치우쳐 있다 [7] [8]. 한 마디로 “프로그램 중심 → 예산 분배 → 행정 성과 측정”이라는 공무원식 KPI 틀에 갇혀 있다는 평가다. 기업과 대학이 자율적으로 협력하여 산업 수요에 맞는 인재를 기르는 생태계보다는, 정부가 주도한 단기 교육과정 수료 인원을 성과 지표로 삼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정작 필요한 최고급 연구 인력이나 창의적 개발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기업들은 “뽑을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역량 있는 젊은 인재들은 글로벌 빅테크나 해외 대학으로 빠져나가는 추세다. 2024년 기준 한국의 AI 인재 순유입 지수는 인구 10만 명당 -0.36명으로,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의 순유출국으로 전락했다. 한국 AI 산업 인력의 약 16%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낮은 임금과 제한된 연구 환경 탓에 “이런 대접 받으며 굳이 한국 갈 이유가 없다”며 떠나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양적으로 길러낸 인재가 정작 국내에는 남아있지 않는 아이러니까지 나타나고 있다 [9]. 이렇게 산업과 유리된 채 숫자에 치중한 인재 정책은 지속가능한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숫자에서 실력으로: 혁신 정책의 새로운 길
태양광 정책의 실패담과 현재의 AI 인재 양성 사업이 보여주는 공통된 교훈은 분명하다. 혁신은 단순한 숫자 놀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 주도의 단기 성과 몰이는 종종 보여주기식 행정 쇼로 끝날 뿐, 산업의 내실을 다지지 못한다. 이제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미 있는 혁신 정책은 눈에 보이는 지표보다 보이지 않는 토대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첫째, 숫자 성과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발전용량 몇 GW, 인재 몇만 명 식의 지표는 정치적 홍보에는 유용할지 모르나, 정작 중요한 품질을 담보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정책 목표를 정량적 지표 달성이 아닌 질적 역량 제고에 두어야 한다. 예컨대 AI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논문 배출, 글로벌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 창출, 국내 기업의 기술 자립도 향상 등이 보다 본질적인 성과 지표가 될 것이다.
둘째, 중앙집권적 정책에서 분권형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모든 것을 정부 부처 주도로 기획·집행하고 일률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현장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했다. 이제는 대학, 기업, 지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각자의 강점을 살리는 분산된 혁신 모델을 장려해야 한다. 정부는 기본 인프라와 규제 완화, 장기 자금 등을 통해 환경을 조성하고, 실제 인재의 육성과 기술 개발은 산업계와 학계가 이끌도록 해야 한다 [8]
셋째, 단기 프로젝트 위주의 지원금을 지양하고 장기적 안목의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 혁신 기술과 인재는 1~2년 지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꾸준히 재도전할 수 있게 5년, 10년을 내다본 연구비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AI 같이 첨단 분야는 슈퍼컴퓨터 인프라, 데이터셋, R&D 자금 등 기반 투자를 지속해주는 것이 인력 양성에는 단기 교육비 지원보다 효과적이다. 세계적 수준의 AI 인재 100명을 키우는 데 집중 투자한다면, 이들이 파생적으로 수천, 수만의 종사자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8].
넷째, 교육-산업 연결고리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현재 많은 청년이 AI를 배우지만, 정작 산업계에서는 실무역량 격차로 채용을 망설이거나, 우수 인재는 해외로 떠나는 괴리가 크다. 이를 해소하려면 대학 교육 과정에 최신 산업 수요를 반영하고 현장 실습, 인턴십, 산학 프로젝트를 통해 졸업생들이 곧바로 활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민간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인재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세제 혜택 등을 주어, 평생학습과 커리어 발전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AI 석·박사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일자리 창출과 연구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10].
마지막으로, 정치적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는 초정권적 혁신 전략이 요구된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산업 혁신은 한두 해에 가시적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방향을 흔들기보다 일관성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초석을 놓는 정책이야말로 진짜 지혜로운 선택이다. 세계 최고를 지향하며 성장통을 견디는 긴 호흡의 투자가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수치상 목표는 채웠지만 실속은 남지 않는 실수를 반복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이 태양광의 전철을 밟지 않고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제 양(量)의 함정에서 벗어나 질(質)의 담론으로 넘어와야 한다. 단기적인 정치 쇼보다는 장기적인 혁신 역량 축적을 중시하는 담대한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 눈에 보이는 패널의 개수나 교육 인원 수보다, 보이지 않는 경쟁력과 창의성이 꽃필 토양을 가꾸는 일에 집중할 때다. 숫자가 아닌 실력으로 말하는 나라, 바로 그런 환경에서만 미래 산업을 이끌 진짜 인재와 기술이 자라날 것이다.
참고문헌
[1] 재생에너지 3020 이행실적 점검결과
https://www.energ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540
[2] Why is South Korea's renewable energy policy failing?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82557369_Why_is_South_Korea's_renewable_energy_policy_failing_A_qualitative_evaluation
[3] “중국에 시장 다 내줬다” — 디이코노미
https://kr.economy.ac/news/2025/10/202510280985
[4] 태양광업체 95% 악화 기사
https://www.ske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476
[5] 공교육 대전환 100만 디지털 인재
https://www.munhwa.com/article/11393686
[6] AI 인재 양성 1.4조
https://biz.chosun.com/policy/policy_sub/2025/11/10/U6GJI4JNQFF67KIUEOGNQJBNO4/
[7] 브런치 정책분석 1
https://brunch.co.kr/@@2Ym1/119
[8] 브런치 정책분석 2 (12
23,25
28 묶음)
https://brunch.co.kr/@daeheestory/119
[9] AI 인재 유출 기사
https://www.mk.co.kr/news/business/11447548
[10] 임금 프리미엄 기사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233066.html